top of page

statement

작품을 통해 특정한 의도나 주제를 전달하는 일에는 항상 신중해지려 노력합니다. 특정 주제를 어떤 단어로 확언하는 순간, 그것이 이미 결정된 언어나 체계적인 개념 속에 갇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는 삶 전반의 태도만을 이야기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존재와 순간에 마음을 쓰며 작업이 가능하고,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현재 거주 중인 인천의 한 신도시에는 10만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있고, 확장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건물의 그림자 너머에는 매립이 완료된 드넓은 택지와 여전히 계속되는 간척사업의 현장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토지는 보통 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 방치된 상태로 머물기 때문에, 잡목으로 수풀이 우거지고 버려진 인공물과 뒤섞인 풍경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설 사업이 착수되는 순간, 사람들이 알고 있던 모습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약간의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용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의 반복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풍경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붓을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해당 작업의 주제를 자연으로의 회귀나 기존 개발 방식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으며 작업 과정에서 풍경과 마주한 순간에 집중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그 방치된 땅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공적으로 탄생한 토지에서도 끝없이 자라나는 생명의 경이로움, 자연이 주는 따스함, 방치된 것들의 형태적 대응과 조화, 그리고 결국 인간에 의하여 사라지게 되는 장소의 모순적인 운명에 관한 복잡한 감정과 같은 영역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한시적으로만 존재할 운명에 처한 자연과 사물이 선사하는, 유연한 시공간과 대화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와 시선의 방향은 다소 명약관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나 자연과 같은 흔한 단어, 머릿속에서 쉽게 떠오르는 전형적인 풍경화의 이미지들. 게다가 수많은 사람이 가상공간을 탐구하거나 우주를 바라보며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시대에 풍경을 그리는 것은 지나간 세월의 답습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근처에는 여전히 자연과 인간의 대립·공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고, 많은 존재에게는 이 상황이 어느 무엇보다 처절하게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 지난 유행가를 읊조리듯, 계속해서 주변에 남아있는 희미한 가능성의 빛을 더듬어가고자 합니다.

© 2026. LEE SANG HYEON.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