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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된 영토의 풍경

 

구나연 (미술비평)

 

경계에 관한 탐색의 바탕에는 경계란 없다는 인식의 재확인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에 존재하는 경계가 영토에는 없다는 식 말이다. 나는 처음 이상현의 작업이 경계의 풍경과 연관될 때, 그것은 인간이 만든 지리적 경계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다. 국경이나 접경과 같이, 실제하는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상의 경계에 관한 풍경이리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상현의 작업은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가 다르다. 그가 본 경계는 도시가 확장되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잠정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경계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그것은, 확정된 경계이기 보다 경계를 예비하고 있다. 보류된 경계 혹은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은 경계의 풍경은 어떤 곳보다 서늘하고 삭막하다.

이상현의 작업은 경계라는 모티브에 관습적으로 내재한 비판적 뉘앙스를 냉담한 관찰자의 태도로 바꾼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교차 지점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곧 무엇인가 발생할 것 같은 징조로 가득 차 있으며, 경계에 관한 어떤 판단도 정지되어 있다. 다만 그것은 내일 당장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현현하기 때문에, 아주 잠시의 풍경, 곧 사라질 풍경이다. 이 모두는 거대 도시화라는 개발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상현의 풍경도 끊임없이 확장되는 도시화의 파형 끝에 잔존하는 신기루이기 때문에, 소외되고 왜소하다. 화가는 이 보류된 영토의 신기루를 기록하기 위해 어두운 밤 그곳으로 간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곳에 눈길을 보내는 그의 시선은 곧 사라질 장소의 밤을 유영한 목격자가 되어, 회화를 통해 이를 하나의 온전한 풍경으로 이행시킨다.

밤이 지닌 비좁은 가시성과 어둠이라는 일관된 채도 안에서 암시된 경계는 채도 높은 낮의 생동이 정적으로 잠식된 대신, 시각적 부연 없는 극적인 현상, 즉 어디든 조명을 비추는 순간 살아나는 강렬한 상황에 집중된다. 그렇게 출현한 이상현의 풍경은 움직거리는 괴형(塊形)처럼 낯설고 육중한 물체로 채워진다. <trap, 2024>의 경우, 검은 배경 위로 알 수 없는 형상이 중심에 자리한다. 신도시를 위해 모든 것을 없앤 자리에 남은 잔여물은 얼핏 거대한 생명체와 같이 보이며, 유한한 시간을 지닌 경계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사라진 장소, 이윤의 기대로 가득찰 장소가 된 낡은 도시의 종결은 꿈틀거리는 도시화의 확대를 위해 아주 잠시 텅 빈 휴지기를 거친다. 그 일시적 시간은 곳곳에 전부 쓸어담지 못하고 찌꺼기처럼 남은 과거의 더미를 남긴다. 그리고 이것이 이상현의 회화가 지닌 기록적 상태로 전환되면서, 어떤 일의 발생 이후와 무언가의 발생 직전의 기미를 모두 가진 기이한 대상으로 퇴화된다.

이 점에서 이상현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은 경계를 예비하는 공간의 모호한 시간성을 보여준다. 그가 경계의 시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의 풍경을 바라본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도시 개발을 통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 같은 풍경을 끊임없이 몸을 불리는 보류된 시간의 언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솟아나는 익숙한 신도시의 미래를 거스르는 경계의 언어로 기록한다. 이는 ‘풍경’의 형태로 드러나지만, 어떤 틈새에 존재하는 검은 암전의 대기 속에서 피어난다. 따라서 경계가 발생하기 이전과 경계의 발생 이후를 동시에 직감하게 만드는 그의 작업은 생경하고 낯선 진행형의 변화 가운데 서 있으며, 파도처럼 쓸려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대신 비대한 도시의 외곽에서 언제든 다시 출현하는 경계의 표피가 된다.

<숨결이 바람 될 때, 2024>는 검은 지평선을 등지고 밀려간 듯한 폐기물의 더미가 등장한다. 밤의 색채를 더욱 검고 황량하게 만드는 더미가 대지 위를 휩쓸고 지나간 바람의 흔적과 같이, 모든 것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있는 인상마저 자아낸다. 앙상한 목재가 나뒹구는 땅에 불빛도 없이 도사린 도시의 뒷면은 휘황한 불빛으로 빚어진 도시의 밤으로 흡수되기 위해, 칠흑에 묻혀 숨죽인 채 존재한다. 또한 그의 풍경에 빈번히 등장하는 덮개는 무엇인가를 가려놓기 위한 도시화의 암묵적 장치이지만, 그 장막조차 더럽고 초라해 보이는 것은 파괴의 잔상이 지닌 방치와 망각의 잣대가 그 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숨결이 만든 거센 바람이 대도시의 동력으로 증폭되어 모든 것을 휩쓸고 간 장소는 어두운 밤에 민낯을 드러낸 대지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 점에서 <덮힌 곳, 2024>은 이상현이 접근하는 유보된 영토를 뒤덮은 장막에 대한 상징적인 접근이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새파란 방수포가 움푹 파인 땅에 덮힌 장면은 가로 6미터의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져 있다. 거친 산맥의 지형 속에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풍경은 경계의 후미진 대상 속에 잠행하는 변화의 역학을 시각적 지형과 물결로 환원한다. 이것은 푸른 밤으로 ‘뒤덮힌’ 땅을 지니고 있으되, 장막이 ‘덮힌 땅’은 요동치는 밤처럼 고여있다. 땅을 숨긴 장막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듯이, 유보된 영토는 경계를 품은 채, 또한 사라지는 장소의 거친 숨을 품은 채 꿈틀거린다.

땅과 밤의 현장이라는 이중의 맥락은 이상현 작업이 지닌 시간적 특징을 함축한다. 그의 풍경은 공간의 변화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는 곧 경계를 둘러싼 시간의 가시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간의 동적 상태를 드러내는 시간이며, 밤의 운동으로 얼핏 윤곽을 암시하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더듬으며 찾을 수밖에 없는 캄캄한 경계의 풍경 안에서, 흐린 불빛은 알 수 없는 세계를 안내하는 힘을 갖는다. 이상현의 <Gaslight, 2024>는 탁한 가로등이 밝힌 경계의 장소를 구현한다. 어둔 밤을 낮처럼 밝힌 도시의 위용을 등지고 선 유보된 영토의 빛은 조금씩 눈을 깜박일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어떤 세계를 담는다. 그것은 제거된 세계와 재건된 세계의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잉여의 풍경이지만, 변화를 견인하는 장소이면서 잠시 주춤한 변화의 껍질이기도 하다.

그의 형식적 특징 또한 고전적 풍경의 리얼리티와 표현적인 색채의 궤적이 지닌 생기가 교차한다. 전자는 밤의 색채 속에서 더욱 뚜렷이 발현하는 대상의 실루엣에 기반하고, 후자는 밤의 색채 속에 잠식된 형상의 미궁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 같은 표현의 양가성은 모두, 밤이라는 상태와 관련되며, 변화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잠정적 장소의 일시성과 맞닿아 있다. 이상현의 작업이 주목하는 경계와 밤의 서사는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보려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찰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것은 도시의 풍경을 결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도시는 움직이며, 중심에서 주변으로 파동한다. 주변은 중심을 선망하고 중심은 주변을 탐닉한다. 이러한 선망과 탐닉이 엇갈리는 장소의 밤은 소스라치도록 황량하며 남루한 찌꺼기를 남긴다. 그리고 밤은 이 모든 것을 뒤덮어, 그것을 보고자 하는 이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현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보된 영토는 그렇게 드러난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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