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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되기, 영매 되기, 소박하게 괴물 되기 

 

황재민

 

이상현은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 화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 나는 이 말을 듣고, 글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 이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 된다. 작가와 화가. 여기서 ‘작가’가 재빠르고 세련된 태도, 제법 ‘동시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정체성과 관계가 있다면, 화가는 숙련도, 능숙함, 자연스러움 등과 관계가 있는 정체성인 듯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직관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조금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작가와 화가는 서로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구분되는가? 무엇이 그 둘을 나눠놓을까?

 

이상현은 맨눈으로 풍경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에겐 관심이 가는 풍경이 있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관리 되지 않고 방치된 간척지다. 그 곳은 유기적 자연과 인공적 자연의 중간지대를 가로 지르는 한 편, 개발이 진행된다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인 장소다. 이상현은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한다. 아크릴은 순간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와 감각을 빠르게 그림으로 옮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과정은 장소의 일시성을 포착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가 된다. 이상현은 같은 풍경을 다른 시간 속에서 여러 차례 담아내며 연작으로 포괄하고, 그렇게 완성된 작업은 일시적인 시간을 다중적으로 재배치한다.

 

이처럼 풍경을 직접 보며 ‘사생(寫生)’하는 것은, 곧 그가 경험하는 짧은 순간에 대한 되새김을 부르기도 한다. 그는 인간에 의해 개발된 간척지에서도 풀이 자라고 구름이 흐른다는 것, 움트는 생명과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모순적인 숭고를 느낀다. 따라서 그의 ‘사생’은 단순히 본 것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원초적인 “감흥”[2]을 나누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감흥”을 소환할 때, 이상현이 눈으로 본 풍경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추상적 소리로 전환되기도 한다.[3] 그러니까 눈을 통해 얻은 경험이 신체 속에서 녹아 내리며 수프처럼 뒤섞인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 이 정체 모를 덩어리 “감흥”은 여러 감각으로 뒤섞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발생하는 이런 과정에 대해, 작가는 자신이 공간의 “영매”[4]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기도 했다.

 

이상현은 ‘본 것을 그리기’에 관심이 있고, 그렇기에 작가라기보다는 화가에 더욱 가까워진다. 본 것을 그린다는 건, 그 중에서도 자연을 그린다는 건, 분명 화가의 일에 속할 것이다. 화가는 정교한 솜씨로 자연을 담아내며,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환영 만들기의 기술을 꾸준히 개선하고 진보시킨다. 문제는 이와 같은 화가의 일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환영주의적으로 닮음을 만들어내는 재현은 한계를 가진다. 미술사가 키스 먹시(Keith Moxey)는, 보다 정교한 환영을 만드는 것이 곧 화가의 일이라는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화가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어떤 초월적인 특징을 지니는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화가의 일이 오직 환영 만들기라는 하나의 목적지로 수렴된다면, 그 경우 유럽적 전통 바깥에서 발생한 비모방적 양식의 미술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환영주의적 재현은 화가의 일이다. 그러나 모든 화가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유형의 문화적 인공물이며 특정한 시대와 구조에 의하여 생산된 결과물이다.[5]

 

위와 같은 성찰과 함께 환영 만들기의 기술 또한 탈신비화된다. 닮음을 창출하는 재현 기술은 자연이라는 광대한 외부를 이상향 삼아 탐구하지만, 그 결과물은 언제나 자연 그 자체보다는 다른 그림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 지적된다.[6] ‘본 것을 그리기’가 그림의 황폐한 내부를 자가 폭로할 때, 화가의 일은 한 차례 변환을 겪는다. 여기서 작가의 일과 화가의 일은 분리되고, 그것도 위계를 가진 채로 분리된다. ‘본 것을 그리기’라는 화가의 일이 다소간 시대착오적인 활동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다만 위에서 말했듯, ‘본 것을 그리기’가 곧 ‘경험한 것을 그리기’로 연결된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화가는 눈을 이용해 세계를 포착하지만, 그렇게 ‘본 것’은 종종 그림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경험으로 덩어리지곤 한다. 만일 ‘본 것’을 그려낸 화가의 그림이, 실은 이처럼 선험적인 덩어리를 번역하기 위한 껍질이라면, 그렇다면 화가의 일에는 아직 조금의 생명력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본 것을 그리기’의 한 축에 환영주의적인 닮음을 만들어내는 재현 기술이 놓인다고 치면, 또 다른 축에는 ’본 것’을 보다 정확히 묘사하여 수량화하려는 합리주의적 재현 기술이 놓일 것이다. 여기서 합리적 재현 기술을 대표하는 시각 장치의 예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거론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 세계를 투명하게 포착하여 매개하는 장치이고, 한 사람의 관찰자가 세계를 실재에 가깝게 매개할 수 있다는 모종의 전능감을 불어 넣어주는 장치였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닫힌, 어두운 방은, 관찰자를 세계와 완전히 분리하고 개별화하며, 이렇게 외부와 이격된 관찰자는 하나의 ‘주체-효과’를 생산한다.[7] 이 ‘주체-효과’란 곧 기계적이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객관화하여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 감각과 같은 불필요한 요소에 현혹되지 않고 이성의 빛에 의거한 정신의 충만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 신체와 온전히 분리된 순수하고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질서를 2차원 평면 위에 옮겨낼 수 있다는 생각과 연관된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관찰자의 눈을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재현의 장치와 동기화하며, 신격화한다.[8]

 

카메라 옵스큐라가 이와 같이 진리를 생산하는 객관적 장치이며, (카메라 옵스큐라에 의해 매개된) ‘본 것을 그리기’가 진리 생산을 보조하는 도구라면, 이 구도 속에서 인간 화가라는 수신부와 그에 의해 수행되는 수동 저장 기능은 해당 기계 장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수신부를 자동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지속되며, 그것은 사진의 발명과 함께 어느 정도 보충된다.[9] 말하자면 인간 화가라는 정체성을 완전한 잉여로 취급하는, ‘본 것을 그리기’의 또 다른 모델이 존재한다.

 

그러나 ‘본 것을 그리기’와 ‘경험한 것을 그리기’는 서로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는 비단 환영주의적 재현 기술의 영역에서만 그러한 건 아니었다. 19세기 초엽에 이르러, 시각의 과학은 카메라 옵스큐라가 암시적으로 주도했던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의 자리로부터 이탈해 인간 주체의 생리적 구성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관찰자의 눈은 육체와 분리된 형이상학적 장치가 아니라, 육체적 요소, 그리고 외부 세계로부터 스며든 데이터, 이들과 분리할 수 없이 뭉친 복합체라는 사실이 지적된다. 분석의 장소는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이 된다.[10] 시각은 이제 육체라는 탁하고 끈적한 차원을, 그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차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하여 과학적 시각의 헤게모니로부터 제외되었던 요소들이 다시금 등장하기 시작한다. 잔상은 그 중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다시 한번 19세기 초엽에 이르러, 잔상과 같은 경험은 진실되고 명징한 지각을 모호하게 만드는 속임수가 아니라, 시각에서 제외될 수 없는 불변의 요소로 재위치된다. 이제 불필요한 환영이란 더는 없다. 일시성은 지각의 필연적인 항수이며 시간성은 관찰의 불가피한 조건이다. 이 잔상, 혹은 시각적 환영과 깊은 관련을 맺는 역사적 예시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그림이 주로 거론되곤 한다. 이를테면 터너가 그린 작품은, 예의 닮음을 구현하되 가능한 재현의 양식을 넘어선다. 이를 통해 어떤 물체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결핍, 모종의 숭고함을 자아낸다.[11] 이것은 꽤나 오래된 사례일 테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스크린 너머의 응시 불가능한 외부를 응시의 스크린 내부로 배치시킨다는, 미술가, 혹은 ‘작가’의 급진적인 역할과도 얼마간 연결된다.[12] 카메라 옵스큐라로 상징되는 단안적(monocular) 절대주의가 지닌 한계 지점이 들춰진 이후, ‘본 것을 그리기’와 연동된 ‘경험한 것을 그리기’는 화가의 또 다른 일을 만들어낸다. 단안 시각이 아닌 양안 시각에 대한 재현적 탐구, 혹은 기계 장치로 (재)매개된 세계에 대한 재현적 탐구가 효과적일 수 있다면, 그 역시 지식을 생산하는 특권적 주체를 가정한 시각성의 진리주의로부터 벗어나 흥미로운 틈새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상현은 ‘본 것을 그리기’가 어떻게 ‘경험한 것을 그리기’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인지,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이를 염두에 둔다면 그의 그림 역시 위의 독해와 얼마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더 이야기 해볼 만한 것이 있다. 화가는 본 것을 그리는 사람이고, 경험한 것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그리기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그림을, 회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회화라는 매체는 시간성, 혹은 신체성과 관계 맺기에 최적의 매체인가? 신체와 시간성을 그 자체로 포함하는 이미지를 구성함에 있어, 다름 아닌 회화의 필연적인 쓸모는 존재하는가?

 

오늘날의 예술이 관계하는 너른 평면에서, 여러 매체는 복합적으로, 혹은 변별적으로(differential) 관계 맺는다. 하나의 ‘순수 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성찰과 함께, 회화 역시 다른 매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갖는 비판적 역할을 설명할 필요를 직면한다. 이때 회화의 자기 변호는 무척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듯 느껴진다. 그렇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히 내려진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회화에게는 비판적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주도적이다. 재현의 잠재성이 힘을 잃은 뒤(자연을 지시할수록 다른 그림을 지시하게 된다는 모순), 회화는 모종의 순수성을 찾고자 했지만, 그렇게 헤게모니를 획득한 추상회화는 ‘시뮬레이션’의 경제에 순응하며 자본의 추상화 과정을 모사하게 된다. 여기서 회화는 ‘시뮬레이션’과 공모하는 아이러니로 작동할 수 있지만, “‘비판’이라는 마술적 작업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13] 여기서 또 한번 작가와 화가는 구분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시 이상현의 그림으로 돌아가 본다. 그가 작가보다는 화가에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은 화가라는 정체성이 갖는 시대착오적인 지점을 감수하고, 아이러니에 참여하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역행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행이되, 어떤 역행이 될 것인가가 중요해질 듯하다. 이상현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은 그가 ‘사생’을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연습을 위해서라는 점이 그러하다. 연습은 분명 화가의 일이다. 연습은 미완과 완성의 사이를 오가며 미결정된 장소를 만드는 것, 만족스러움이 찾아올 때까지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업에서 만족스러움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연습은 지속되며 어쩌면 끝없이 반복된다. 연습을 위한 ‘사생’ 행위는 화가의 자신감을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림 그리기와 연습하기가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될 때, 닮은 것을 만들어내거나 순수한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에 앞서 더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주가 될 때, 화가는 전능한 관찰자나 미치광이 과학자라기보다는 풍경 앞을 떠나지 않는 구도자와 같아진다. 이상현은 광대하거나 초월적인 자연을 찾는 대신, 어디서든 보기 쉬운 ‘평범한’ 풍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앞에서 전능감 대신 (더 잘 그리지 못한다는 마음에서 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에게 화가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힘 없음, 미숙함, 무력감을 느끼며 꾸준하게 미끄러지며 소박하게 미완되는 일처럼 보인다. 이것은 ‘작가’에게는 쉽게 허용되지 않는 가치다.[14]

 

화가라는 정체성은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정체성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게 너무 거추장스러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터너의 예를 떠올려본다. 한때의 감각적 체제에 의해 잊히거나 억압된 것이 재위치될 때, 그 운동에서 감지될 수 있는 어떠한 힘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시각적, 감각적 체제로부터 잠시 물러나 시대착오적이 되는 것 또한, 단순한 역행이 아니라, 활기 있는 운동의 사례로 위치될 수 있을지 모른다. 기계적 재현을 넘어, 연산적(computational) 재현이 일반화되는 상황, 사진과 영화의 “실재론적” 이데올로기가 상실되고[15] 지표성(indexicality)이 다중화된 상황, 이때 ‘비판의 마술’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운 회화는 언젠가 역행하는 괴물성을 바탕으로 또 다른 흐름을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상현의 그리기에 포함된 모종의 ‘소박함’ 역시 역설적으로 날카로운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테지만.

 

 

참고 문헌

키스 먹시, 『이론의 실천』, 조주연 옮김, 현실문화, 2008

조나단 크래리, 『관찰자의 기술』, 임동근·오성훈 외 옮김, 문화과학사, 2001

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전유경 옮김, 그린비, 2010

 

[1] 작가와의 대화, 2022년 10월 29일.

[2] 김진주, 《파람》 전시 서문, 2022, 페이지 표기 없음.

[3] 김진주, 이상현, 기획자와 작가의 질의 응답, 2022, 페이지 표기 없음.

[4] 김진주, 이상현, 기획자와 작가의 질의 응답, 2022, 페이지 표기 없음.

[5] 키스 먹시, 『이론의 실천』, 조주연 옮김, 현실문화, 2008, 66-68쪽.

[6] 키스 먹시, 같은 책, 67쪽.

[7] 조나단 크래리, 『관찰자의 기술』, 임동근·오성훈 외 옮김, 문화과학사, 2001, 60쪽.

[8] 조나단 크래리, 같은 책, 81-81쪽.

[9] 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1999년 베를린 강의』, 윤원화 옮김, 현실문화, 2011, 108쪽.

[10] 조나단 크래리, 같은 책, 112-113쪽.

[11] 조나단 크래리, 같은 책, 215쪽.

[12] 키스 먹시, 같은 책, 103쪽.

[13] 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전유경 옮김, 그린비, 2010, 330-333쪽.

[14] "개념주의적 제스처를 취하는 예술은 예술가의 활동을 미술사 서적의 첫 장에 위치 시킨다. 성공적인 제스처는 이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 (...) 그러나 한 명의 개인이 얼마나 자주 역사적 차원의 개념주의적 제스처를 성취할 수 있을까?"

Jan Verwoert, 「Why are conceptual artist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 trans. Hugh Rorrison, 『Afterall』, Volume 12(Autumn/Winter 2005), 12p.

[15] 조나단 크래리, 「시각의 현대화」, 할 포스터 엮음, 『시각과 시각성』, 최연희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4,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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